곪은 미국 자화상 그대로...영화 속 ‘조커’ 진짜 나타날라

2019. 9. 29. 14:13영화와 TV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미국 영화 <조커>가 내달 초 전 세계 극장 개봉을 하기도 전에 논란에 휩싸였다. 이 작품이 과거에 일어났던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등 미국 사회의 곪은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지에선 모방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대형 인명살상 사고를 막기 위한 총기규제 여론도 다시 불붙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2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조커를 영웅으로 묘사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 <조커>의 주인공을 모방한 반사회적 범죄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화는 어렸을 적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서 플렉이 어른이 된 뒤에도 사회에서 버림받고 절대 악한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 속 조커에 자극받은 범죄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임지는 현실 속에 많은 ‘예비 조커’들이 있다고 했다. 영화비평가 스테파니 자카렉은 “미국에서는 아서 플렉 같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대형 총기난사와 폭력 사건이 매주 일어난다”며 “언젠가는 그런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다.

 

특히 이 영화가 2012년 12명의 사망자를 낸 콜로라도주 덴버의 오로라 극장 총기난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범인은 영화 ‘배트맨 트릴로지’의 마지막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뒤 극장에 난입해 관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범인이 조커처럼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이 사건과 영화 <조커>를 함께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오로라 극장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달 워너브라더스에 “메이저 플랫폼 사업자답게 그에 걸맞은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라”며 유감을 표하는 공개서한을 보냈으며, 참사 현장이었던 오로라 극장은 <조커>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총기 문제가 빈발하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재차 부각됐다. 총기규제 옹호 시민단체 ‘건스 다운 아메리카’ 대표 이고르 볼스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보고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즐기지만 미국만큼 폭력범죄 비율이 높지는 않다”면서 “문제는 미국에서는 총기를 손에 넣기가 무척 쉽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로라 극장 사건 유족들은 총기규제 입법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에게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총격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워너브라더스와 배우들은 연출 의도를 앞세우며 상영을 멈출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20일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가 모방범죄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인터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보도했다. 워너브라더스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스토리텔링의 역할은 복잡한 문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게 하는 데 있다. 조커 캐릭터도 영화도 현실 속 폭력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사회적 인물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먼저 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