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7. 20:56ㆍ역사와 흔적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이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이멘서페이션 공원에 서 있다. 이 동상의 철거를 두고 지난 8월 11일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 집회와 이에 맞서는 반대 집회가 일어났다. 미국은 이후 전국적인 남부연합군 동상 철거 움직임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누군가 동상 아래에 집회 도중 차량 돌진테러로 숨진 헤더 헤이어 파크를 기리는 문구를 가져다놓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시의회는 22일(현지시간)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와 그 심복 장군 스톤월 잭슨 동상을 검은 천을 덮어 가리기로 결정했다. 두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측과 이에 반대해 지난 11일부터 폭력시위까지 일으킨 이들 주장 사이에서 나름의 중간책으로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동상을 가린다고 이미 수면 위로 떠오른 갈등과 분쟁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남북전쟁을 둘러싼 뿌리 깊은 미국의 역사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층 더 뜨거워졌다. 앞으로 더 많은 충돌이 뒤이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의 말대로 역사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변한다. 남북전쟁은 노예제 때문에 벌어졌다. 노예제를 지키려는 남부와 폐지하려는 북부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후 남부의 많은 이들은 이를 다르게 기억했다. 북부 침략군에 맞서 고향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리는 이렇게 전쟁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키는데 안성맞춤인 인물이었다. 1861년 4월 고향 버지니아주가 연방 탈퇴를 결정하자 리는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다”면서 남부연합군에 가담했다. 리 평전을 쓴 로이 블런트는 그가 다른 이기적인 이유가 아닌 고향을 지키기 위해 연방을 떠났다며 “리의 기준에서는 명예로운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리가 개인적으로는 노예제를 혐오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퍼진 것도 그를 ‘명예로운 남북전쟁’의 상징적 인물로 만드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1856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리는 “노예제는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사악한 제도”라고 썼다.
냉정히 말해 그가 흑인 노예들의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노예제는 백인에게 훨씬 더 사악한 제도” “흑인들은 아프리카에 있을 때보다 미국에 와서 도덕적, 사회적, 육체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삶이 나아졌다”고 적었다. 무엇보다 그 역시 노예주였다. 그러나 어쨌든, 리가 노예제에 혐오감을 표시했다는 것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노예제를 싫어한 이가 남부연합 총사령관이었다는 것이 부각될 수록 노예제가 전쟁의 발단이었다는 사실은 흐릿해졌다.
그렇게 리는 남부를 넘어 나라 전체의 영웅이 됐다. 그리고 1920년대 들어 인종차별주의가 다시 거세지자 남부는 곳곳에 리 동상과 기념물이 건설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샬러츠빌 동상도 1924년 세워졌다. 백인우월주의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부활하고, ‘짐 크로법’으로 불린 인종분리법이 다시 강화되던 시대였다.

8월 22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에서 남부연합군 동상을 철거하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역사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든 리가 노예제를 지키려 한 편에 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리는 누군가에게는 남부연합의 영웅이며 고결함의 상징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예제의 상징이었다”고 썼다. 1960년대 민권운동 이후 흑인들은 도처의 리 동상을 철거하는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AP통신은 “리를 남부연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백인우월주의자들과 남북전쟁을 다르게 기억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동상 철거 운동의 한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존 미첨 밴더빌트대 교수는 21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남부는 전쟁을 직시하는 것을 불편해하지만, 우리가 이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면 환상과 우화 속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아네트 고든 리드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의 트윗을 비판하며 “리와 스톤월 동상을 철거한다고 워싱턴과 제퍼슨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과 제퍼슨은 미국을 세웠다. 리와 잭슨은 그 나라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 리드 교수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노예제의 편에 서서 연방과 싸웠다는 사실”이며 “(트럼프는) 남부연합의 도덕적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샬러츠빌 사태 이후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측의 목소리는 더 거세졌다. 텍사스대는 21일 새벽 리 동상을 비롯해 캠퍼스 내 남부연합 인물들의 동상 4개를 철거했다. 이 대학 그렉 펜브스 총장은 샬러츠빌 사태를 보고 철거를 결정했다면서 “남부연합 기념물들이 오늘날 백인우월주의와 네오나치의 상징이 됐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역시 샬러츠빌 사태 이후 시내 리와 잭슨의 동상을 철거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듀크대도 지난 19일 캠퍼스 내 리 동상을 철거했다. 리 동상은 샬러츠빌 사태에 분노한 이들에 의해 얼굴 곳곳이 뜯겨나가는 등 훼손된 상태였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최근 조사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미국이 얼마나 갈라져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응답자 48%는 샬러츠빌 동상 철거에 ‘강력히 반대한다’ 또는 ‘다소 반대한다’고 답했다. 백인 응답자 40%는 동상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답했다. 흑인 응답자 33%는 ‘강력하게 찬성한다’고 답했다. 미국의 역사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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