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3. 20:10ㆍ책과 글
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지음·정유진 옮김 |글항아리 | 504쪽 | 2만4000원
미국에서 공화당이 우세한 주를 흔히 ‘레드 주’라고 부른다. 반면에 민주당이 우세한 지역은 ‘블루 주’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버락 오바마는 미국이 하나로 연대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두려움과 냉소의 정치를 끝내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우리는 두려움보다 희망을 택했다. 우리는 분열보다 단결을 선택했다”고 외쳤다. 이처럼 미국 정치인들에게 ‘단결’은 빼놓을 수 없는 수사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대권을 잡으려는 이들은 너나없이 ‘하나의 미국’을 주장해왔다.
![[책과 삶]‘하나의 미국’은 애초부터 없었다](http://img.khan.co.kr/news/2017/06/30/l_2017070101000011600325461.jpg)
하지만 책의 저자 콜린 우다드는 오히려 ‘분열’에 주목한다. 역사 분야 저널리스트인 그는 “미국의 근본적인 공동 가치는 애초부터 없었다”면서 “미국은 제임스타운과 플리머스의 시대 이래, 단 한번도 분열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동부 버지니아주의 제임스타운은 북미 최초의 영국 식민지이며, 플리머스는 메이플라워호의 도착지다. 저자는 미국의 분열이 “레드 주와 블루 주, 보수와 진보, 자본가와 노동자, 백인과 흑인, 신앙인과 세속주의자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을 흔들어놓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51개 주’로 나뉜 지도를 떠올리면서 미국의 분열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그 지도조차도 “잊으라”고 말한다. “그 지도는 매우 자의적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문화공동체를 가로질러 쪼개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가 바라보는 ‘분열’의 핵심은 ‘수많은 문화공동체’다. 게다가 그 문화적 분열은 매우 오랜 연원을 지녔으며 심지어 운명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책의 표지를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한 장의 지도야말로 분열의 실체다.
‘오늘날의 미국 국민들(The American Nations Today)’이라는 제목을 지닌 지도에는 모두 ‘11개의 국민’이 표기돼 있다. 매사추세츠만 해안가에 세워진 ‘양키덤’은 뉴잉글랜드 황야에 새로운 시온을 건설하려 했던 칼뱅주의자들의 땅이다. “교육과 정치를 중요시하고 공동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금욕도 불사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 양키덤을 감싸고 있는 ‘미들랜드’는 영국 퀘이커 교도들에 의해 건설됐는데, “미국의 여러 국민 중 가장 ‘미국인’다운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자신들의 유토피아로 이주해오는 정착민들을 반갑게 끌어안은” 그곳 사람들은 인종·이념적으로 순혈주의를 배격했고 정치에는 무관심했다.
저자는 이렇듯이 11개 국민을 문화적으로 낱낱이 분석한다. 예컨대 동부 해안가의 ‘타이드워터’는 영국 남부 젠트리의 후손들이 세운 지주들의 땅이다. “그곳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권위와 전통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평등이나 일반 대중의 정치 참여에 우호적이지 않다.” 반면에 양키덤과 타이드워터 사이에 놓여 있는 ‘뉴네덜란드’는 개방성과 진취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다. 특히 네덜란드 식민주의자들이 건설한 뉴암스테르담(뉴욕의 옛 이름)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뒤섞이고, 투기의 열망과 물질 만능주의로 불탔으며, 무엇이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끌벅적한 도시”였다.
뉴네덜란드와 더불어 1960년대 문화운동의 출발지였던 ‘레프트코스트’는 미국에서도 진보적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태평양과 캐스케이드, 코스트산맥 사이에 끼어 길다랗게 형성된 이곳은 “정부를 신뢰하고 개인의 지유로운 탐구와 발견을 뒷받침해줄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로 근대적 환경운동과 글로벌 지식혁명이 이곳에서 촉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트위터, 실리콘밸리의 산실이었으며 게이 인권운동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미국은 “11개의 자아를 가진 나라”다. 그래서 저자는 “(11개의 분열을 끌어안을 수 있는) 더욱 투명하고 공개적이며 효율적인 정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의 말미에서 옮긴이 정유진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갖는 11개 국민들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저자의 분석틀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유효했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정부의 선의를 믿고 공공선을 중시하는 양키덤과 레프트코스트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고, (백인우월주의와 귀족적 특권의 보루였던) 디프사우스는 부자 감세를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옮긴이는 “이 책의 저자가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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