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의 60년전 편지, 대학 창고 캐비넷에서 발견
영국 맨체스터대학 컴퓨터공학과 창고의 오래된 캐비넷에서 발견된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의 편지와 원고들. |맨체스터대학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의 60여년전 편지와 원고 148건이 맨체스터 대학의 오래된 캐비넷에서 발견됐다.
28일 맨체스터대에 따르면 튜링의 편지는 이 대학의 짐 마일스 컴퓨터공학 교수가 창고의 오래된 캐비넷을 치우다가 우연히 발견됐다. 편지는 1949년부터 튜링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1954년까지 쓰여진 것으로 튜링은 1948년부터 이 대학의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었다. 편지는 ‘앨런 튜링’이라는 이름을 휘갈겨 쓴 붉은 색 파일에 들어 있었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튜링의 개인사보다는 그의 연구가 주를 이룬다. 그 중 그가 미국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는 1953년 물리학자인 도널드 맥케이 런던 킹스칼리지대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미국에서 열리는 회의에 연설을 해달라는 초대를 받은 것에 대해 “나는 그 여정이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미국을 혐오한다”고 적었다. 미국을 왜 싫어하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가 2차 세계대전 기간 일했던 영국 정보기관 GCHQ로부터 온 편지도 있었다. 전쟁 당시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 쓰이던 저택 블레츨리파크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튜링의 사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했다. 연합군이 튜링이 개발한 암호 해독기로 독일 잠수함의 경로를 파악해 낸 덕분에 종전을 2~4년 앞당겼다는 평가도 있다. 해독기 개발과정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파일 안에는 튜링이 1951년 7월 BBC가 인공지능(AI)에 대해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를 위해 작성한 육필 원고 초안도 들어 있었다. 마일스 교수는 가디언에 “편지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렇게 오래 동안 감춰져 있었는지 놀랍고, 왜 따로 보관된 것인지 미스터리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동성애가 중범죄로 처벌하던 시절을 살았던 것이 불행이었다. 그는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 1951년 체포된 뒤 여성호르몬을 강제로 주입하게 하는 ‘화학적 거세’를 당했다. 수치를 견디지 못한 튜링은 41살에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로고를 한 입 베어먹은 사과로 한 것이 그가 존경하던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튜링은 사후 59년만인 2013년 왕실의 사면을 받았다. 이후 영국 정부는 지난해 과거에 범죄였던 동성애로 처벌받은 이들을 사면하는 이른바 ‘앨런튜링법’으로 6만5000명을 사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