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속에서 연주하는 카라카스의 바이올리니스트
2017.07.24
우일리 아르테아가(23)는 카라카스의 바이올리니스트다. 화염병이 아닌 바이올린을 들고 시위에 나선다.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시위는 벌써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00명 가까운 이가 목숨을 잃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내뿜는 뿌연 연기 속에서 아르테아가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총성이 오가는 시위 현장에서 아르테아가가 연주하는 베네수엘라 전통 음악 ‘알마라네라’ 소리는 끈질기게 이어진다. 시위대 몇 사람이 그를 둘러싸 보호한다. 조악한 방패들도 하나씩 들었다.
우일리 아르테아가(가운데)가 지난 5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카라카스_AP연합뉴스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잠시 멎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아르테아가는 친정부 성향의 대법원으로 행진하는 시위대 무리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왼쪽 얼굴을 다쳤다. 몇 시간 동안 격렬하게 이어진 시위대와 보안군의 충돌에 휩쓸린 것이다.
아르테아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시위대에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촬영했다. 왼쪽 얼굴과 입술에 붕대를 붙이고 한 손에 바이올린과 활을 쥔 채였다. 아르테아가는 “고무탄도 총알도 베네수엘라 독립을 위한 우리의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면서 “내일 나는 거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우일리 아르테아가가 22일(현지시간) 시위 도중 부상당한 뒤 병원 침대에 누워 영상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일리 아르테아가 트위터
지난 5월 부서진 바이올린을 든 채로 울고 있는 영상이 퍼지면서 아르테아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오토바이를 탄 보안군이 연주 중인 내게 다가와 바이올린을 움켜쥐었다”고 말했다. 아르테아가가 저항하자 보안군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아르테아가가 돌려받았을 때 바이올린은 이미 줄이 뜯어지고 부서진 상태였다. 그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콜롬비아 출신 세계적인 팝스타 샤키라는 그를 위해 직접 사인한 새 바이올린을 보냈다.
아르테아가는 엘시스테마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엘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국가 지원을 받는 음악 교육 재단이다. 마약과 범죄에 노출된 가난한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구한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3년 숨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엘시스테마를 직접 관리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차베스 정권 아래 엘시스테마에서 음악을 배웠던 아르테아가가 이제는 그 후임자 니콜라스 마두로에 맞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그는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18세 소년 아르만도 카니사레스의 장례식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카니사레스도 아르테아가처럼 엘시스테마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달 10일 비올라를 집에 두고 시위에 나섰던 그는 보안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아르테아가는 “내 친구 아르만도를 기억한다”면서 “나는 지금 거리에서 살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고, (아르만도 같은) 베네수엘라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쓰레기를 헤집으며 음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반정부 성향의 보수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아르테아가가 시위대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아르테아가는 해외에서 벌어지는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뉴욕을 찾았다. 공화당 의원의 초대로 의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심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