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TV

인어공주부터 모아나까지 총집합 “더 이상 왕자를 기다리지 않아요”

bomida 2017. 7. 30. 19:26

2017.7.17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 월트디즈니의 공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녀와 야수>의 벨, <포카혼타스>의 인디언 소녀 포카혼타스, <알라딘>의 재스민, <인어공주>의 아리엘, <겨울왕국>의 안나, <라푼젤>의 라푼젤, <모아나>의 모아나,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를 연기했던 성우들은 이날 D23엑스포에 참석해 나란히 포토존에 섰다. 


사진 월트디즈니


D23엑스포는 디즈니사의 공식 팬클럽 D23이 2년마다 여는 행사다. D는 디즈니사의 앞글자 ‘D’에서, 23은 디즈니가 설립된 1923년에서 나왔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벨을 연기했던 페이지 오하라는 “공주 9명이 함께 모인 건 유례가 없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불참했다. 두 배역의 성우들은 이미 타계했다.

 

이들이 한날 한시에 모인 것은 내년 디즈니가 내놓는 애니메이션 <랄프 브레이크 더 인터넷: 주먹왕 랄프 2>에 이 공주들이 모두 출연하기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티저 영상에서 디즈니는 고정관념을 깨고 재탄생한 공주들을 선보였다. 극 속에서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던 랄프와 여주인공 바넬로피는 디즈니 팬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공주들의 옷방을 발견한다. 공주들은 생기 넘치고 편안한 바넬로피의 모습을 보고는 불편한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짧은 치마와 티셔츠로 갈아입는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입은 티셔츠에는 ‘저스트 렛 잇 고 (Just Let it go)’라 쓰여 있다. 나이키의 슬로건 ‘저스트 두 잇’과 <겨울왕국> 주제가 ‘렛 잇 고’를 합성한 것이다.

 

디즈니와 픽사의 최고창작책임자(CCO) 존 래세터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를 뛰어넘은 그들을 상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1995년 포카혼타스를 연기했던 아이린 베다드는 잡지 버라이어티에 “공주는 시대와 함께 계속 바뀐다”며 “예전에 듣던 얘기를 다시 가져와 비틀어 볼 기회”라고 말했다. 



디즈니의 여주인공들은 그 시대의 여성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면서 진화해왔다. 1937년에 나온 디즈니의 첫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백설공주는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검고,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입술은 장미처럼 붉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1950년 <신데렐라>의 신데렐라와 1959년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는 왕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1980년대부터 공주들은 달라졌다. 1989년 <인어공주>에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하는 진취적인 여성 아리엘이 등장한다. 1991년 <미녀와 야수>의 벨은 지적이고 독립적이어서 “관습의 속박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내놓은 동명의 실사영화에서 벨은 더욱 당찬 여성으로 변신했다.

 

1992년 <알라딘>은 처음으로 유럽 이외 지역을 배경 삼아 백인이 아닌 여주인공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재스민 공주는 남성에 의존하는 인물이고 성적 이미지가 강조돼, 중동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5년 <포카혼타스>에는 미국 원주민 여성이 등장했다. 독립적이고 용감하지만 역시 성적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평을 들었다. 1998년 <뮬란>은 솔직하고 용감하며 자신감 넘치는 여성 캐릭터를 그려, 이전의 ‘비백인’ 여주인공보다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나온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는 피부가 가무잡잡한 디즈니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주인공이었다. 개구리가 된 왕자에게 키스해 마법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도 개구리로 변해버리지만, 꿈을 이루려 노력하면서 한량인 왕자를 변화시키는 인물로 그려졌다. 티아나를 연기한 아니카 노니 로즈는 “티아나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에게 당당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쳤고, 이들이 당당하다는 것을 친구들에게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2012년 등장한 메리다 역시 털털하고 강인한 소녀다. 작은 눈에 헝클어진 곱슬머리, 평범한 몸매의 현실적인 외모로 그려졌다. 지난해 나온 <모아나>의 여주인공은 폴리네시아 모누투이족 소녀로, 스스로 극중에서 “나는 공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메리다와 모아나의 이야기는 러브스토리가 뼈대를 이루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이전과 달랐다. 


이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