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연한다고 몰매맞는 라디오헤드, 켄 로치와 ‘설전’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가 예술인들의 이스라엘 공연·전시 보이콧 운동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영화감독 켄 로치,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 출신 뮤지션 로저 워터스 등은 지난 4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기로 한 공연을 취소하라고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명예대주교까지 포함해 47명의 문화예술, 종교계 인사가 이 서한에 서명했다. 하지만 라디오헤드가 계획대로 오는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연을 하겠다고 밝히자, 11일 로치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밴드를 비난하는 칼럼까지 싣는 등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가 11일(현지시간)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이스라엘 보이콧운동을 촉구하는 자신의 칼럼을 트위터에 올렸다. 켄 로치 트위터
로치는 칼럼에서 이스라엘은 과거 인종분리정책을 펼쳤던 남아공과 같다면서, 인권과 국제법을 무시하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빌려 결점을 숨기려는 시도에 라디오헤드가 동참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라디오헤드는 압제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탄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지 결정하라”는 글과 함께 기사 웹페이지 링크를 걸고 이스라엘 공연 취소를 압박했다. 로치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랜드 앤 프리덤>(1995년) 등 사회, 정치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뤄 온 감독이다. 4월 라디오헤드 보낸 서한에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불법 점유에는 눈감으면서 티베트의 중국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밴드 리더 톰 요크는 바로 트위터에 로치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요크는 “어떤 나라에서 공연하다고 그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인 미국에서도 공연을 한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예술과 학문은 국경에 벽을 세우는 게 넘나드는 것이어야 하며 인간성, 표현의 자유, 대화를 함께 누리는 행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디오헤드는 총 8차례 이스라엘에서 공연했으며 가장 최근 공연은 2000년에 했다. 전 세계적인 이스라엘 보이콧운동(BDS)가 시작된 2005년 이후로는 첫 이스라엘 공연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TRNSMT 페스티벌 무대에 라디오헤드가 오르자 몇몇 관객이 팔레스타인 국기와 함께 “라디오헤드는 텔아비브 공연을 취소하라”는 문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글래스고_AFP연합뉴스
밴드는 공연장에서도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 7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TRNSMT 페스티벌 무대 앞에서 몇몇 관객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이스라엘 공연 반대 뜻을 드러냈다. 요크는 이들을 향해 “빌어먹을 사람들”이라고 욕설을 해 더욱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요크는 그동안 밴드에 쏟아진 비난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11일 트위터에서 이스라엘의 아랍계 유대인 뮤지션과 결혼한 밴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를 언급하면서 이·팔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했다. “그린우드는 이 사안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그는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친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음악매거진 롤링스톤과 인터뷰에서는 BDS운동, 특히 문화예술계의 보이콧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어느 한쪽만 옳고 상대편은 틀리다는 이분법적 논쟁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BDS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비난받은 뮤지션이나 배우는 이전에도 많았다. 팝스타 비욘세는 지난해 6월 텔아비브 공연계획이 알려지면서 비난받았다. 누리꾼들은 당시 트위터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부상당한 아이들 사진을 올리며 “흑인 인권은 중요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냐”고 지적했다. 비욘세는 두 달 뒤인 지난해 8월 이스라엘 공연을 취소했다.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2014년 7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해 BDS운동이 거세진 이후에도 이스라엘 기업 소다스트림 광고에 출연했다. 비난 여론에도 요한슨이 소다스트림과 계약을 이유로 광고출연을 고집하자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그를 홍보대사에서 퇴출시켰다.
가수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배우 샤론 스톤과 로버트 드니로는 2013년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의 90세 생일잔치에 참석했다가 비난을 샀다. 같이 초대된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스라엘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불참했다.
박효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