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가 기억해야 할 곳” 세계문화유산 된 브라질 ‘노예항구’ 발롱고
19세기 남미 최대 노예 무역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브라질 일간 풀랴데상파울루는 유네스코가 9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의 발롱고 부두 유적지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발롱고는 과거 세계 최대 노예 무역국가였던 브라질이 아프리카인들을 들여오던 곳이다. 1779년 건설돼 1889년 매립될 때까지 100년 이상 운영됐다. 유네스코는 발롱고가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 같은 곳이라면서 “인류 역사에서 잊혀서는 안될 장소”라고 설명했다.
발롱고는 20세기 들어 브라질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2011년 유적지대가 발굴되면서 실체가 다시 드러났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건설 공사를 진행하던 중 노예들의 유골이 묻힌 무덤이 발굴된 것이다. 콩고와 앙골라, 모잠비크 등지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간직했던 부적 같은 물건들이 유골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우아 광장의 발롱고 부두 유적. 18세기 브라질 최대 노예 무역항으로 사용된 발롱고 부두는 2011년 들어 유적이 발굴되면서 실체가 다시 드러났다. 위키미디어
1800년대에만 아프리카인 90만명이 발롱고를 통해 브라질에 끌려온 것으로 추산된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오랜 항해로 쇠약해진 흑인들은 이곳 발롱고에서 기력을 회복한 뒤 노예시장으로 팔려나갔다. 그렇지 못한 흑인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BBC는 발롱고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1770년에서 1830년 사이 죽은 노예 수천명이 묻혀 있다고 보도했다.
발롱고는 흑인 노예들을 들여오기 위해 만들어졌다. 흑인 노예들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시민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흑인들을 들여오는 부두를 건설한 것이다. 브라질 통치를 위해 파견된 포르투갈 총독은 1774년 “흑인들이 항구에 내리자마자 주도로를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온다”면서 “이들은 벌거벗은데다 온갖 질병을 퍼뜨린다”는 불평을 기록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노예제의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로 올라간다. 브라질을 식민통치하던 포르투갈은 사탕수수 농장일을 시키기 위해 1530년대부터 아프리카 흑인들을 무수히 끌고와 노예로 삼았다. 1822년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뒤로도 노예제는 이어졌다. 1831년 노예 매매가 폐지됐지만 노예제도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밀매매도 계속 번창했다. 1888년이 되어서야 노예제가 완전 폐지됐다.
발롱고 부두는 이듬해 매립됐고 지금은 광장으로 남아있다. 노예제가 폐지되기까지 300여년에 걸쳐 브라질에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는 400만명이 넘는다. 같은 기간 세계 전체 노예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심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