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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출간 20년...세계는 아직도 ‘마법앓이’  

bomida 2017. 6. 28. 16:31

남편과 헤어진 영국의 싱글맘 조앤 롤링이 1993년 12월 갓난 딸 제시카를 데리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도착했을 때 짐가방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 제1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세 장(章) 분량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 3년 전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오던 길에 연착된 기차 안에서 구상을 떠올린 것을 시작으로 줄거리를 짜고 살을 붙여 만든 첫 원고였다. 

 

아기를 재우고 틈틈이 써낸 원고는 출판사 12곳에서 거절당하다 1997년 6월 27일에야 세상 빛을 봤다. 그나마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1권 초판을 딱 500부만 찍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17년 현재 해리 포터 시리즈는 79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에서 4억5000만부가 팔려나갔다. 아이리쉬타임스는 “해리 포터는 어린이도서의 전과 후를 나누는 경계선이 됐다”며 “해리 포터는 악당 볼드모트를 물리치기로 돼 있었지만 누구도 그가 독서를 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오는 27일 해리 포터 출간 20주년을 맞아 영국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블룸즈버리는 4권짜리 20주년 특별판을 출간했다. 출판사는 또 미국 플로리다 유니버설올랜도리조트에 만들어진 해리포터 테마파크 ‘해리포터의 마법세계’에 다녀올 수 있는 왕복항공권, 숙박권 등을 제공하는 경품 이벤트를 마련했다. 2010년 문을 연 이곳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마법학교 호그와트성, 호그스미드 마을이 재연돼 있다. 영국 내 학교를 대상으로 마법 대회를 열어서 우승하는 학교의 도서관을 호그와트의 도서관처럼 꾸며주기로 했다. 


영국도서관은 오는 10월20일부터 해리 포터의 마법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지난 17일에는 영국 전역 20개 서점에서 해리 포터 상식 퀴즈대회가 열렸다. 해리 포터 영화가 촬영된 런던 외곽 세트장, 롤링이 작품을 쓴 곳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에딘버러 등을 돌아보는 다양한 여행 상품도 나왔다. 

 

해리 포터는 20년 동안 갖가지 기록과 화제를 낳았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제7권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2007년 7월 발매될 때 24시간 안에 영국에서만 265만권이 팔려나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팔린 책이 됐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제 1권 초판은 지난해 4만3750파운드(약 6300만원)를 호가했다. 매 시리즈는 출간될 때마다 ‘마법의 마케팅’을 선보였다. 


1997년 6월27일 출간된 해리 포터 제1권 초판


제4권이 나온 2000년에는 자정에 전세계에서 동시 출간됐고 이듬해에는 해리 포터의 생일이자 롤링의 생일인 7월 31일에 해리 포터 웹사이트가 문을 열었다. 롤링은 그간 인세 수입만 11억5000만달러(약 1조3100억원)를 벌어 갑부가 됐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는 85억 달러 흥행수익을 올렸다. 이외에도 연극, 뮤지컬, 게임으로도 제작되는 등 ‘해리 포터 산업’이 만들어졌다.

 

2014년 페이스북이 프랑스, 인도, 이탈리아, 멕시코, 브라질, 필리핀 6개 나라의 사용자들이 인생의 책을 꼽은 것을 분석한 결과 해리 포터가 1위로 꼽혔다. 소설이 나온 후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해리, 헤르미온느 등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경우가 폭증했다. 


해리 포터는 영국 판타지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4년에 나온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재조명을 받으며 2000년 이후 시리즈 영화로 제작되는 등 판타지 붐이 일었다. 소설은 해리 포터를 읽고 자란 세대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해 7월 펜실베이니아 대학 다이애나 머츠 교수는 해리 포터에 열광하는 팬일수록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낮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그는 “트럼프의 가치가 책 속에 담긴 관용, 다름에 대한 존중, 폭력에 대한 반대, 전제주의적 통치 반대 등과 반대된다”고 분석했다. 


2010년에는 미국 유니버설올랜도리조트에 해리 포터 테마파크가 문을 열었다. 블룸즈버리 출판사 웹사이트 등


실제 롤링은 작품 안에 성평등과 다양성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법학교나 마법세계의 행정조직인 마법부에는 고위직 여성이나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또 롤링은 호그와트 학교의 교장인 앨버스 덤블도어에 대해 “그를 동성애자로 구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백인 뿐 아니라 흑인, 인도 및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



“트럼프는 볼드모트” 사회운동가 된 롤링

 

우울증에 시달리던 가난한 싱글맘 조앤 K 롤링의 인생은 20년 사이에 마법처럼 변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고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이제 롤링은 더 이상 해리 포터 이야기를 쓰지 않지만 문학 세계 바깥에서 그는 여전히 바쁘다.

 

아동소설 해리 포터에 동성애와 인종주의, 계급갈등 등 다양한 정치적 이슈를 담아냈던 롤링은 현실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감추지 않는다. 지난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롤링은 “나는 국제주의자이며, 내가 믿는 가치는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속 마법학교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의 성 정체성 논란을 두고 한 독자가 트위터에서 “덤블도어는 도무지 동성애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롤링은 이렇게 답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은 마치 사람처럼 보이니까.” 

 

2015년 해리 포터 연극에서 여주인공 헤르미온느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돼 논란이 일었을 때는 “한번도 (헤르미온느의)가 하얀 피부라고 명시한 적 없다”면서 “나는 흑인 헤르미온느를 사랑한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때로 그는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2006년 롤링은 깡마른 모델들을 비판하며 “두 딸이 머리는 텅 비고 깡마른 복제인간처럼 자랄까 걱정”이라고 했다. 마른 몸매의 모델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 때에도 롤링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편협한 사람들이 유럽연합 탈퇴를 주도하고 있다”고 탈퇴파를 맹비난했다.

 

롤링은 노동당을 위해 2008년 100만파운드를 내놓기도 했던 열성 지지자다. 하지만 제러미 코빈 대표와는 사이가 편치 않다. 코빈 지지자들이 그를 “덤블도어의 사회주의자 버전”이라 부르자 지난해 롤링은 “코빈은 덤블도어가 아니다”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코빈보다는 과거 노동당 신좌파 노선을 이끈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성향에 가깝다. 브라운 전 총리의 아내 사라와는 지금도 절친한 사이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 때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둘 다 대단하다”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혹독한 평가를 내린다. 2015년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금지를 주장하자 롤링은 그를 소설 속 악당 볼드모트와 비교하며 “끔찍하다”고 했다. 롤링의 트럼프 비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런던 핀스버리파크 모스크를 겨냥한 백인 남성의 차량공격이 일어나자 롤링은 무슬림을 향한 증오범죄가 극단화된 데에는 대중매체들과 극우 정치인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극우 극단주의가 급증하는 영국에서 테러용의자 3명 중 1명은 백인”이라고도 했다.

 

이혼 후 홀로 두 딸을 키운 롤링은 한부모 가정 지원단체 등 14개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소설 속 빛을 밝히는 마법 ‘루모스’에서 이름을 딴 자선단체도 세웠다. 루모스는 동유럽과 미국 고아원의 장애아들을 돕는다. 2012년에는 1억6000만달러를 기부해,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이름이 빠졌다.


경향신문 이인숙, 심진용 기자